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로 비롯된 상처의 골은 점점 깊어져 악순환만 반복된다. 서로 간에 대화도 무의미 하다. 오히려 오해를 해결하고자 나누는 대화에서조차 또 새로운 오해를 낳게 된다. 허위사실로 인한 오해는 쉽게 풀릴 수 있지만, 불신으로 인한 오해는 가만히 있는다면 평생 간다.
서로 사랑하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가족 중에서도 특히 아버지와 서로 오해해 싸우는 경우가 잦았다. 아버지께서 "언제 집에 오니?"라는 말을 했을 때 아버지께선 진심으로 아들이 걱정되는 마음에 물어봤지만, 아들은 자신을 마치 집에 잘 안 들어오는 파렴치하고 불효스러운 아들로 취급한다고 오해해 서운해 할 수 있다. 반대로, 아들이 여러 사람들과 있는 자리라 시끄러워서 벨 소리를 못 들었거나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전화를 못 받았는데,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를 싫어해서 전화를 받기 싫어한다고 오해해 서운해 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엔 아버지와의 오해를 제3자의 개입과 시간이 흐름으로써 해결됐다. 이미 오해로 인해 서로에 대해 악감정이 있다면, 상대가 "아"라고 하면 "어"라고 자동필터해 진심을 왜곡시킨다. 어머니와 누나가 서로의 진심을 전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며, 서로의 오해의 불씨가 꺼질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것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오해를 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사실상 말투에서 어미조사 하나 다르다고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닌데, 당시에는 왜 이런 사소한 것에 집착하며. 왜 오해하려고 굳은 노력을 해서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려고 했는지 후회가 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명언이 있다. 돌이켜 보면 굉장히 유치하고 사소한 일이었는데, 당시엔 진심보다도 말 토씨 하나에 더 중점을 뒀는지 모르겠다.
- 2011년 12월 28일 작성된 연극 후기 일부 중 발췌